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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일상.

공포영화리뷰 - < 23아이덴티티, Split, 2016 > / 어린시절의 트라우마, 그리고 나의 영혼.

by 문라이트03 2020. 11. 20.

 

 

 

 

감독, M 나이트 샤말란.

장르, 공포, 스릴러

원어, Split

장르, 공포, 스릴러

국가, 미국

주연, 제임스맥어보이, 안야 테일러 조이.

 

 

영화소개

 

23개의 인격을 가진 남자 ‘케빈’(제임스 맥어보이). 그는 언제 누가 등장할지 모르는 인격들 사이를 오가며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하는 ‘플레처’ 박사(베티 버클리)에게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어느 날, ‘케빈’은 지금까지 등장한 적 없는 24번째 인격의 지시로 3명의 소녀들을 납치하고 오래도록 계획했던 비밀스러운 일을 꾸민다. 소녀들이 그에게서 도망치려 할수록 ‘케빈’의 인격들은 점차 폭주하기 시작하는데… 그 안의 수 많은 인격 중 누가, 누구를 위해 움직이는가

 

 

 

 

 

 

 

 

 

공포영화리뷰 - < 23아이덴티티, Split, 2016 >  / 어린시절의 트라우마, 그리고 나의 영혼.

23아이덴티티리뷰, 23아이덴티티감상문, 23아이덴티티후기, 해리성인격장해

 

 

 

 

2016년도에 개봉했을때 코로나 터지기전에 극장에서 보게 된 영화 23아이덴티티.

나는 이 영화의 소감을 다중인격장애라는 정신병에 대한 연관된  개인적인 고찰로 남겨보고싶었다.

처음에는 시간이 남아서 혼자 영화나 볼까하는 생각으로 극장에 찾아가서 보게 된 영화.

나는 이 영화가 공포영화인줄은 정말 몰랐었다.

그냥 살짝 스릴러, 무서운 드라마 정도로 킬링타임용으로 아무생각이 보게된 영화였는데,

보고나서 너무너무 무서워서 그것도 이 영화를 혼자서 보게되었는데 혼자보고 집에 갈때 울뻔했었다.

저녁늦게 본 영화라 괜히 밤이 무서워서 혼자서 집까지가는데 혹시나하고 엄한 사람들을 괜히 혼자서 의식하고 걸었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이 영화는 피가튀기는 장면도, 그렇다고 누구를 죽이는 장면도 없었는데 이상하게 무섭고 기괴하고, 뭔가 묘하게 슬프면서 주인공의 강렬한 연기가 인상에 깊어 오래도록 내 기억에속에 남아 있던 영화 중 하나였다.

얼마전부터 나는 정신병이라던지, 정신에 관련된 그것도 다중인격에 많은 관심이 생겨 인테넷에 찾아보거나 다중인격에대한 주제를 책으로 조금 흥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이 주제에 대해서 예전부터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얼마전부터 다중인격에 대해서 아주 매력적이고 강렬하게 표현한 스릴러 영화 23아이덴티티가 떠올라서 이 주제에 대해서 정신분석과 엮어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이 영화는 분명 다중인격에대한 정신병을 소재로 한 무서운 영화였다.

그것도 이중인격도 아니고 다중인격 말이다. 무려 24개의 다중인격, 정말 주인공 제임스 맥어보이의 연기는 두말할 것 없이 대단하고 강렬해서 내 뇌리에서 한동안 내내 떠오르기도 했었다.

그래서 많이 무서웠다.

왜 나는 요즘 정신병, 다중인격, 등등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일까? 그거는 아마내가 나도모르게 나 역시도 마음의 병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데 요즘들어서 특히, 그리고 갈수록 사회가 조현병이라던지, 연극쟁애라던지, 사회불안증, 대인공포증, 등등 이런문제를 안고사는 많은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에게 표현하고 쉽게 말할 수 없어서 그렇지, 우리들은 아마 살면서 많은 트라우마, 정신적 충격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미처 그 트라우마를 치료할 수 없고, 어떻게 받아들여하는지 모른 채, 마음의 문을 꼭 닫아놓은채 그렇게 우리는 어른이 된 채로, 가면을 쓴채로 진짜의 나를 외면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왜냐면 요즘들어 나도 나 자신한테 소름끼치다고 느낄 때가 많아지고 있고, 굉장히 위선적이고, 무엇보다 사회에 대한 불안이 나이가 들수록 많이 느껴지는 것 같아 고민이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도 사회불안증, 대인기피증 분명 살면서 겪은 상처들로 인해 받은 정신적 트라우마가 엄청나게 내안에 쌓여있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요즘 사람들은 살면서 누구나가 가면을 쓰고 살아갈 것이다.

때로는 카멜레온처럼 상황, 환경, 친구에따라 자신의 본 모습, 아이덴티티를 숨기고 정체성을 바꾸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탓하고 원만하고, 변덕스러운 자신을 증오하기까지 한다.

나 역시도 꾀나 다중적이고, 어떤면에서는 이중적인 모습까지 가지고 있다.

굉장히 위선적일때도 있고, 두얼굴의 사나이처럼 본 모습이 바뀔 때도 있었다.

그래서 고민이었다. 내체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나라는 사람의 본성은 이리도 쉽게 타협하고 가식적이란 말인가하고 말이다.

정말 많이 고민하고 후회스러웠고 마음 아팠기에, 나는 아직도 나의 정신병같은 공포들에 대해 많은 의문과 문제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나 역시도 정상적이게 살아가기에는 겪은 트라우마와 상처들이 유년시절부터 많았기에,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안아내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럽고 때로는 화가나고 절망적이라서 누군가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기도 했었다.

분명 우리는 누구나 이중인격이며, 누군가에게 꾀나 다중적인 사람일 것이다.

시시때때로 상황판단에따라 얼굴을 바꾸고, 나를 숨기고 사는 우리네들은 분명 다중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중까지는 될 것이다. 나역시 이런 사람들을 주변에서 자주 봐왔고, 주변사람들의 이중성에 꾀나 소름끼치다고 느낄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란 때로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그렇게 인간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유독 사회적, 대인적으로 정신적이로 힘든 이시기에 이 영화가 자주 떠올랐고,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 다르게 나한테 와 닿는 영화라고 느끼게 되었다.

처음보았을 때는 그냥 정신병자의 스릴러 영화이구나 하고 꾀 많이 무섭다, 실제로 저런사람이 있으면 사회가 얼마나 무서워질까 싶었고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이 영화가 꾀나 다른면으로 나한테 느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정신적인, 그것도 다중인격에 대한 정신병의 소재를 꾀나 깊이, 그것도 강렬하게 심도있게 표현한 수작중에 하나였다.

단순히 스릴러, 공포영화라고 하기에는 소재라던가, 정신병에 접근하는 연기, 대사, 장면들이 너무나 의미심장하고

디테일등에서 다중인격에 대해서 정말 묘한 장면들을 슬프고 비참하면서 소름끼치게 표현했기때문이다.

그것도 다중인격에 대해서 굉장히 심도있게 관찰하고 그 인격들을 어둔고 깊이있게 표현한 감독이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역대급의 악역의 연기를 보연준 제임스 맥어보이의 연기는 두말할 것 없이 대단했다.

다중인격이라는 정신병에 대해서 굉장히 깊이있게 다룬 심도깊은 영화가 아닐까라고 나는 생각해본다.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정말 다중인격을 가진자의 모습, 그 공포에 대해서 분명 우리에게 무언가를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본 모습 원래의 자아, 자신의 이름은 케빈이였다.

하지만 그는 어느 순간부터 다른 인격들 즉 때로는 친구, 대로는 적, 때로는 엄마같은 다른 인격들의 모습으로 변하고 한다.

마치 연기자가 다른 배역들을 맡을 때처럼 한 인간에 내제대 본성과 다르게 완전히 다른 얼굴, 표정, 말투, 분위기, 생김새가 되어버려 변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다중인격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주인공이 연기한 케빈의 다중인격은 정말 다른 인격 그러니까 하나의 인격 그 자체였다.

그만큼 무서우면서, 한 사람안에 이렇게 많은 인간의 성격이 존재 할 수 있을까? 이렇게까지 자신을 변해가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케빈안에는 어느순간부터 케빈자신을 점령시키고 자신을 주인처럼 지배하기 시작한 새로운 다른 인격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였다.

그리고 그 수는 23개의 인격이라는 어마무시한 다중인격의 소유자가 되고 만다.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케빈은 일부러 연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고 말이다. 자신의 본 모습을 지우고 일부러 다른 사람을 위장한채 변신하면서 자신을 감추고 살고 있는 것은 알닐까라고 생각해 봤지만, 케빈의 본모습, 그연기는 정말로 다른 인격의 모습 그 자체였다.

몸집이 변한다던가. 말투, 정신, 성격, 습관까지 변하는 디테일의 연기를 보고 그는 정말로 어떤 일들로 인해 자신을 인격을 숨긴채 살고있는 그리고 정말 다른 정신 다른 인격에 지배되어버린 다중인격 장애 그 자체였기 때문이였다.

케빈은 다른 인격이 자신을 점령하고 지배할 때마다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고 번해버리고 만다.

그렇게 쉽게 그는 다른 인격, 다른 사람, 즉 다른 누군가가 되어버린다.

여기서 더 심각한 것은 케빈의 인격중에서 가장 무섭고 두려운, 그리고 가장 잔인한 인격이 그 모습을 나타내고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전의 다른 인격들은 조금 기괴하고 무섭고 독특하고 섬뜩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남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았기에 그럭저럭 케빈은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케빈속에서 새롭게 태어날 새로운 인격중 가장 잔인한 인격은 약해진 케빈을 완전히 잡아먹고 사로잡기에 이른다.

그는 케빈을 두려움과 무서움에 떨게한다.

케빈조차 그의 존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니깐 말이다.

하지만 케빈속에 있는 그 괴물은 그런 케빈을 마음대로 조종하고 심지어 위협을 주고, 케빈의 마지막 영혼까지 자기가 지배하려고 한다.

다른인격들을 모조리 죽이고, 마지막 케빈마저 지배하려고 하는 무시무시한 그 마지막 인격, 

그 무시한 인격이 등장하려고 한다.

과연 케빈은 지배당하고 말 것인가, 그 역시 케빈이 불러낸 망상이자, 환상, 그리고 두려움 그 자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케빈은 그 두려움에 결국 지배당하고 말지만, 그와 싸워 이기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사실 그 인격들 속에서는 너무나도 약하디 약한 케빈이 있었다.

그 무시무시한 인격은 케빈의 마지막 인격으로 등장해, 세상을 파괴하고 케빈을 파괴하고, 복수를 꿈꾸는 살인마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고통받지 않은 적 없는, 아파해 본적 없는, 행복해보이고 사랑해보이는 사람들만 노렸던 그.

그는 고통받았기에, 인생에 깊이 아파하고 고통하고, 자해를 시도한 여자주인공만은 살려주게 된다.

그는 말한다 서로 이해한다고. 이 깊고 아픈 세상속에서 서로를 이해한다고 말이다.

이 영화는 공포영화이기전에 트라우마극복에 대해서도 깊은 의미를 주게되는 영화중에 하나이다.

트라우마, 케빈이 다중인격을 가지게 된 트라우마는 무엇일까? 그런 정신병을 가지게된 원인, 그 근원은 결국 무엇일까

영화는 후반에 그 의미심장한 장면을 조금 우리에게 보여준다.

케빈은 어린 시절 극심한 아동학대를 당한 생존자 중에 한명이였다.

그것도 자신을 태어나게 한 어머니로 부터 극심한 아동학대를 당했었다.

그에게는 어린시절 그런 가슴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존재했었다.

그누구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고, 아주 어릴때부터 다림질로 학대까지 당하던 모습을 보여준다.

케빈은 어린시절의 극도로 고통스러운 트라우마속에서 결국 견디지 못하고 자신과 다른 자신을 부정하는 다른 인격들을 만들고 불러모으고 연기하게 된다.

그리고 서서히 그 인격들은 약했던 자신의 어린시절의 기억과 고통을 덮어주고 잊게만들어준다.

그 어린시절의 근원이이였던 기억들, 행복도존재하지 않았던 불행했던 트라우마들을 케빈은 어쩌면 다른 인격들로 위장한채 고통받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그래서 단순히 공포영화라고 하기에는 조금 슬프고 아련하고, 마음이 아팠다.

이 영화는 어린시절 겪은 주인공들의 트라우마, 고통, 슬픔에 대한 이야기를 무섭게 담고있는 드라마 스릴러 중에 하나였다.

여자, 남자 두 주인공 모두 어린시절 깊은 트라우마, 고통에 시달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도 못된 어른들로 인해 말이다.

못난 어른들속에서 약하디 약했던 주인공들은 몹쓸 짓을 당하게 되고, 그 기억과 트라우마 고통은 크면서 계속 자신을 괴롭히는 하나의 고통이 되어간다.

시간이지나도, 어른이 되어도 그 트라우마는 그들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들은 어딘지 모르게 우울한 어른이 되어간다.

그 속에서 케빈은 어른이 되어야 했고, 자신과 다른, 강한 인격의 소유자들 평범하고 행복하고, 자신, 어릴적 자신의 진짜 모습, 본성을 지워버리게 된다.

그 어린시절 자신의 진짜모습과, 본성은 너무나도 추악했고, 안좋은 기억만 떠오르게 했기에, 그 두 주인공은 어딘지 모르게 눈빛이 슬퍼보이고 우울해보인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케빈은 여주인공에게 너는 나와 같은 상처와 고통이 있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서로는 어린시절 받은 불행과 고통을 알아본 것이다.

 

 

 

 

 

 

 

 

 

 

나는 이 영화가 후반으로 갈수록 굉장히 슬펐다.

주인공여자의 공허하고 우울한 눈빛의 연기가 인상깊으면서, 어딘지 영화 전반적인 무드가 우울하고 

슬프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런 트라우마, 정신병의 원인 근본 상처에 대해서 그리고 그 극복에 대해서 우리에게 무섭게 보여준다.

장르만 스릴러일뿐, 내용은 어린시절의 트라우마의 극복과, 아픔, 슬픔, 상처에 대한 무서운 이야기일 뿐이다.

케빈역시 어린시절 부모의 학대속에서 침대밑에 숨어있던 장면들.

그리고 자신을 혼내로 올라오는 무서운목소리로 케빈이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장면

어쩌면 케빈의 자신의 진짜 이름, 케빈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인격, 즉, 자신의 영혼을 죽이고 그렇게 자신을 보호하는 다중인격의 어른으로 성장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23아이덴티티가 아니라 원제 영혼이 그 뜻을 의미심장하게 나타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영혼,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영혼이다.

케빈의 영혼, 마지막 케빈이 쥐고있는 진짜 자신의 본 모습, 그 영혼, 그는 자신의 분열로 고통스러워 한다.

그 자신의 내재된 분열은 바로 자아가 분열되는 것, 그리고 무시무시한 복수, 악마의 본성으로 지배되어가는 것,

케빈역시 평범한 인간, 바른 인간으로 성장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그의 상처는 연약하고 어리고 작았던 케빈에게 자신의 갸냘픈 영혼을 지켜야하는 보호막처럼 

자신의 본 모습, 영혼을 잃어버리게 자신의 모습을 있는그대로 사랑할 수 없이 자신을 분열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자하는 끝없는 노력, 자아 분열.

그것은 케빈의 원초적, 그 근원 과거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그 속에 상처받은 작은 자신의 영혼, 

하지만 그는 결국 악에 지배당하고 결국 인간 이성의 마지막 끈 자신이 괴물이 되기에 이르게 된다.

결국 그는 천사도 될 수 있고 악마도 될 수 있는 인간의 운명에 악마가 되기로 선택한다.

케빈의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된 괴물.

점점서서히 복수라는 이름하에 엄청나게 잔이해지는 모습으로 변해가는 케빈 아니, 괴물이 되어버린 악마.

그레서 케빈은 자신속에 순진한 자신의 어린아이와, 자신의 무뚝뚝하고 잔인한 어른이 되어버린 모습들을 마구잡이로 만들어 버린 것이 아닐까.

 

 

 

 

 

 

 

케빈은 결국 자신의 영혼, 작은 아이, 아픈아이를 지키지 못했다.

그는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는 결국 악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게 된 것이다.

인간의 운명은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선택한다. 우리는 결국 인간이 될 것인가 짐승으로 추락할 것인가.

거기에 인간의 미래와 운명이 있을 것이다.

결국 싸워야 할 것은 자신안의 자신과의 싸움, 자신속에 있는 본능,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고 이성이 있기에 억누르고 거듭나고 치유받고 극복하는 우리의 자아. 자신과의 싸움은 언제나 고통스럽고, 인간이기에 겪게되는 수만가지의 

유혹은 언제나우리를 슬프게 한다.

인간이 인간답게, 그리고 올바른 인성을 가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영화.

사람이 그 수많은 보물과,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결국 인간이 되지못하면, 인성이되지 못하면 우리는 결국 추락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많이 봐오지 않았던가.

 

결국 삶은 인간이 된다는 것, 사람답게 산다는 것, 바른 인생을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는 약하고 무지한 인간들의 학교이자, 하나의 배움터이자 그것이 인간의 드라마가 아니겠는가.

너무 심각하게 인생이야기를 영화감상문으로 쓰는 것은 아닌가 싶지만, 나는 이 영화가 한동안 깊게 내 마음에 자리잡고 무언가 나의 슬픈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무엇일까, 나역시도 살면서 때가타면서 점점 잃어버리게 되는 나의 진정한 진짜 자아, 나의 연역했지만 상처받았던 자아, 본능, 본성,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하나의 영혼 그것이 나는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살면서 받은 고통으로 인해 나를 끝임없이 몰아세우고 분열시키고 살았기 때문에 나는 안다.

그가 저처럼 자신을 지키려고 수많은 인격을 포장하고 만들어 낸 이유를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인격 그 잔인한 괴물의 인격을 불러내고 그와 동화되는 순간, 그는 결국 케빈을 버리고 포기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 괴물은 케빈을 괴롭히고 두려움에 항상 떨게 했었다.

케빈은 결국 자신의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인간이 되기를 포기한 것일까?

나 역시도 나를 비난하고, 매 순간 두렵고, 내가 아니였음 하는 마음에, 내가 나를 싫어했던 그마음들에 많은 공감이 되어 나 자신을 여러차례 분열시키기도 했다.

그 순간 나는 분명 영혼을 잃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에 대한 사랑, 사랑, 그것이기 때문이다.

영혼 그 이름은 다름아닌 사랑이다. 그것이 자신에 대한 사랑이든 삶에 대한 사랑이든 상관 없지만,

케빈은 분명 상처들로 그 사랑을 잃어버리고 결국 사랑을 포기하기로 추악함을 선택하기로 한것이다.

 

하지만 영혼은 언제나 하나이다.

영혼을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영혼은 하나로 자신을 통합하고, 사랑하고, 자신의 근원으로 되돌아오게 해준다.

영혼은 그렇게 분열의 반대인 모습과, 나 자신을 온전히 느끼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분열은 비난, 상처, 고통만을 남긴다.

분열은 내가 내 자신을 나의 심장, 나의 근원으로부터 처절하게 나의 모든 것을 떼어놓고 싶어하는 하나의 발버둥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심각하게 영화를 본 건가 깊을 정도로 나는 케빈이라는 본성의 아이가 너무 슬프고 안타까웠다.

케빈의 작은 아이가 너무 슬펐다.

그리고 여기에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된 다른 모습의 여자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는 괴물로 변한 그를 유일하게 이해해주는 여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이로 변한 케빈을 이해해주려고 노력하던 여자.

그 역시 어린시절 받은 극심한 트라우마가 있지만, 결국 그녀는 그 곳을 탈출하게 된다.

자신이 감춰지고 숨겨진 그곳은 다름아닌 동물원이였다.

여기에는 역시 의미심장한 미장센들이 숨어있다.

동물원, 그녀는 그곳에서 구해진다. 어린시절 그녀는 인간이 아닌 하나의 짐승같았던 어른들에게 모욕당하지만,

그게 그녀의 트라우마와 어린시절의 상처였지만

그녀는 끝내 그 짐승같던 곳, 짐승들로부터 탈출한다

그리고 나오면서 그녀는 지긋이 짐승을 응시한다.

여기에는 많은 숨겨진 의미가 있다.

짐승, 동물원, 어른, 아이, 등등 이 영화가 제시하는 깊은 미장센들은 다순히 공포영화로 치부하기에는 슬프고,

깊고 의미심장하기 때문이다.

짐승들 속의 어린소녀였던 그녀. 그리고 짐승들, 인간이지 못한 그 짐승같았던 어른들 속에서 고통받은채 커버린 아이.

그녀는 무사히 탈출하고, 분명 스스로 극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짐승, 그리고 진정한 인간이 된다는 것에 대해 정신적 트라우마라는 주제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을 하게 해준 좋은 영화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인간 본성, 악마와 천사. 그리고 트라우마의 극복에대해 많은 생각거리를 준 아주 좋은 영화이다.

비록 너무나 무섭게 표현되었지만 그래서 이 영화가 주는 매력이 엄청나다.

 

케빈의 과거시절 그는 결국 극복하지 못하고, 짐승들에 지배당하게 되었지만,

케빈역시 짐승이되었던 어른들의 희생자일 뿐이였다.

그리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인격들속에서 자신을 고립시키고 자라온 케빈이 슬프면서 안타까웠다.

격국 그는 트라우마를 받아 그렇게 거짓속에서 자신을 지킨채 살아야 했고,

짐승들이 된 어른들속에서 상처받고 고통받고, 자신의 영혼을 분리시키며 괴로워했던 케빈이 기억에 남았다.

케빈은 분명 아동학대 피해자였으며, 짐승이되어버린 어른들의 희생자였다.

그 어른들역시 자신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었으며, 삶에 짐승이 되어버리기로 선택한 인간들이였다.

케빈은 분명 사랑받지 못한 환경속에서 그렇게 자신을 괴롭히며 자신의 영혼을 죽이며 살아온 것이다.

 

 

 

 

 

 

나 역시 요즘들어 정신병이라든가, 정신병자에 관한 이야기들에 이상하게 관심이가고 흥미가 생겨나고 있어 문뜩 어느날 이 영화가 떠올라 감상문을 적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들어 이렇게 글을 적어보게 되었다.

왜 나는 요즘 마음의 병들에 많은 관심이 가는 것일까

그것은 내게는 잊지못할 아픈 트라우마가 존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견디고 극복하기에는 나 역시도 나를 인가이기를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게 이토록 힘들다면 짐승들속에서 나 역시도 인간이를 포기하고 싶고, 때로는 이 삶을 너무나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찾아오기에 나는 아직도 마음이 아프고, 그런 영화와 책을 찾아보거나 보게되면 너무나 슬프기 때문이다.

나 역시 짐승같은 악마들에게 많은 상처를 받았지만, 나역시도 그들과 같아질 수는 없기에,

많은 내적혼란과 분열, 갈등을 겪고 있다.

청제성과, 인격적으로 많은 혼란과 갈등을 겪고 있는 이 시기에 그리고 갈수록 정신병, 마음의 병으로 인한 많은 사고들이 느껴지기에 인간은 그렇게 삶을 그리고 타인을 지옥으로 만들고,

짐승이 되어가는 것인가 싶었다.

나는 과도기의 시기에 있는 내가 너무 힘들다. 삶에 어떤 순간에는 분명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과 시기, 그리고 그런 시험이 주어진다.

지금의 내 상황이 정말 딱 그러하다.

모든 상황과 순간들이, 그냥저냥 때우며 사는 삶이 아니라, 정말 어떤 인간이 될 것인지.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야야하는 너는 어떻게 살것이며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계속 시험받고 내게 물어오는 것만 같다.

거기에 나는 아직 답하지 못했다. 나는 그 대답을 해야하는 순간에 오기는 했지만 나의 정체성을 확실히 해야하고 신념을 가져야하고 어떤 인간이 되겠다고 결정해야 하지만 나느 아직 그러지 못했다.

아니 못하고 있다. 그러기에 나역시도 때로는 나의 다른 인격들로 인해 괴롭다.

꼭 그가 진짜같고 내가 가짜같으며, 꼬 그 인격이 진짜 내가 되어릴것 만 같아서 어떨때는 너무나도 두렵다.

그서 요즘 정신병에 대한, 책들을 가까이 하며 지내고 있다.

수많은 정신병들, 대인관계, 불안증, 강박장애 등등 그것들이 한 순간 시험에 들려고 내게 악마처럼 등장해 나를 괴롭히는 것만 같다.

그 목소리들은 정말 다른 인격, 즉 악마로 위장해 계속 내게 말을 걸고 그렇게 하라고 부추기는 엄청난 유혹의 소리들이였다.

삶을 살수록 어른이 될 수록 어쩌면 어린시절의 트라우마, 그리고 상처들은 순간순간 나의 발목을 잡고 묻는다 너는 어떤 인간이고, 어떤 사람이냐고, 그리고 어떤 영혼을 가지고 있냐고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지혜롭지 못하고 마음의 병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나의 모습들 속에서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이도 슬프고 공감이 되었다.

어른이 되어갈수록 우리는 짐승이 되어갈 것인가, 아니면 내가 바라던 당당한 어른이 되어갈 것인가. 수많은 기로에 서게 된다.

때로는 짐승처럼 추한 어른이 된 사람들도 보고, 아주 지혜롭고 존경심이 절로나는 어른들의 모습들도 보게 된다.

나는 아직도 나의 트라우마들 때문에 괴롭다 그리고 그것들로 인해서 나는 쉽게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정할 수 가 없다.

지금 이시기는 내게 이렇게나 고통스럽고 정신적으로 너무나 큰 압박들속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서 있고 싶었다.

아이와 어른 그 사이에 있는 나, 과거의 나의 고통과 상처들은 순간 내 발목을 붙잡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계속 시험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고통들속에서 고통받고 방황하는 나는 때로는 추악해지며, 때로는 삶을 부정하고,

비난하며,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모습들에서 진정 내가 잘 살고 있으며, 진정내가 원하던 삶과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내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는 그렇게 내 영혼에 중요하고 내 인생의 사랑에 중요한 것이였다.

그것들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파괴하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진정으로 파괴시키기 때문이였다.

살면서 때로는 우리는 악마를 보기도 천사같은 사람을 보기도 한다.

그리고 나느 아직도 많이 배워야 할 것이다.

어두운 곳 그림자 처럼 가려진 나의 진정한 영혼에 대해서, 그리고 진짜 나에 대해서 말이다.

사랑 없는 삶. 그리고 시험받는 삶.

나는 아직 대답하지 못했다. 어떤 삶과, 어른이 될 것인지.

한참이 지나서인지, 아니면 끝까지 방황할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덴티티가 뜻하는 정체성, 우리는 분명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아이에서 자신이 바라는 어른이 되기를 꿈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이덴티티 정체성, 그리고 진짜 나, 영혼. 

텅빈 투명한 아무것도 없는 나, 공허한 나. 살수록 사람들에 대한 실망과 배신들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나.

그리고 정체성, 그것은 어떤 신념을 지키고 살 것인가. 결국 나로 돌아와 어떤 나로 살고 하는 것인지, 어떻게 극복하며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과거를 화해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자세로 미래를 바라보며 살것인지에 대한 깊은 이야기였다.

나라는 존재, 무엇을 진짜로 책임지고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성장이자 어린 시절 받지 못한 사랑에 대한 극복의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짐승과 인간이라는 두 갈래의 길에 서서 나는 오늘도 한참을 반성하고, 고뇌한다.

인생의 방향,

어두운 나의 그림자를 받아들이고 결국 치유하고 살아가는 길이란 분명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자신의 아이의 그림자들을 받아들여야지만 우리는 그동안 보지 않았던  앞을 볼 수 있고 자신이 바라는  새로운 선택과 그 힘들 앞에 천천히 발걸음을 옮길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살짝 비현실적이고 너무 극단적으로 치우치는 모습과, 말도안되는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 조금 나오지만 그래도 

품성이 높은 작품이라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자신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리고 결국 괴물이 되어버린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

23아이덴티티 23가지의 정체성, 진짜 당신의 영혼은 무엇인가.

그리고 마지막 무시무시한 인격의 등장. 결국 복수의 괴물이 되어버린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

내게 이 영화는 엄청나게 매력적이고 인상깊은 영화였다.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영화자체가 어둡지만  다중인격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선사해주며, 보는 내내 주인공의 연기력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어린시절과 트라우마, 정체성,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어진 환경과, 상황, 순간들은 말한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당신의 선택으로 말이다....

 

 

 

 

 

 

 

 

영화를 진지하게 보는 인간의 감상문.

이 감상문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며, 저의 심각한 망상으로 끄적여 본 영화 감상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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