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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일상.

영화 - < 기기괴괴 성형수 리뷰. > / 허망하고 허망한 껍데기는 가라.

by 문라이트03 2020. 9. 29.

 

 

 

 

 

한국영화 - < 기기괴괴 성형수 감상문, 후기 > / 욕망과 껍데기만 추구하는 사이코시대.

허망하고 허망한 껍데기는 가라.

 

 

 

 

미디어의 광기,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피평론.

감독 / 조경훈, 

기기괴괴성형수 웹툰 원작.

 

 

 

 

 

 

 

 

오랜만에 한국 애니메이션을 극장에서 볼 수 있다는 소식에 한 걸음에 달려가 찾아 본 영화 기기괴괴 성형수.

애니메이션이야 최근에 개봉한 영화들 중 워낙 유명한 것들이 많지만,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등등 유명한 일본영화를 요즘 자주 접하게 되었고, 또 작품성으로 유명하기도 했었는데, 한국에서 웹툰으로 원작으로한 영화는 정말 오랜만에 보게된 것이라 조금 많이 기대가 되었다.

영상에서 조금 특이하지만 어딘지 으스스하면서 강렬한 예고편과 함께 그림과 일러스트라던지 내용면에서 많은 기대를 가지고 기다리던 영화였다.

성형에 대한 이야기라던지, 외모 강박주의, 그리고 한 여름에 공포로 된 애니메이션 등등, 왠지 재미면에서도 물론이고 여름이라 그런지 이런 오싹하고 기괴한 내용의 재미난 영화를 많이 기다리고 있던 터였는데, 우연히 개봉일을 알게되고 바로 찾아서 극장에서 보게되었다.

생각보다 내용은 그렇게 많이 잔인하지도 많이 무섭지도 않지만, 분명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에 대해서 너무나도 솔직하고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비평하면서 한 편으로는 웃기면서 희화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영화 기기괴괴 성형수.

제목대로 많이 기괴하고, 굉장히 독특하고 중간중간 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흔한 모습들과 행동들에 대해서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던 영화였다.

그리고 그 중에서 이 영화는 성형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그리고 그 뒤에 뿌리깊에 여자들의 마음에 각인되고 내려져오는 외모지상주의에 대해서 적나라하고 아프게 하지만 꾀 있을 듯하게 호러스럽게 표현되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충분히 있을 수 있을 이야기라고 생각이 들정도로 요즘들어 한국사회의 외모, 성형에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왜냐면 그 문제가 한 여자의 인생, 소녀의 인생에 있어서 어떤 무의식의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 그리고 내적 갈등을 깊이 나타내는지 잘 표현되었다고 느껴졌던 영화였기 때문이였다.

이 영화는 요즘 사회의 외모, 그리고 성형에 대해서 우리가 사회의 미래에 결국 이런 끔찍한 일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도 없고, 그런 외모의 차별과, 우월에 대하여 이 영화는 극단적인 예를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주인공 들의 모습은 우리가 살면서 누구나 흔히 접하고 볼 수 있는 아주 지극히 평범한 일상들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그곳에서 예지라는 주인공 여자를 통해 우리는 외모지상주의와 성형이라는 허영과, 욕망과 욕심이 한 여자를 얼마나 망가뜨리며 인생을 얼마나 왜곡시키며, 고통스럽게 만들어 추락하고 죽어가는지를 자세히 보여준다.

그렇다 이 영화는 예지라는 주인공을 통해서 성형, 그 첫 시작의 모순들에 대해서 말해주는데, 예지라는 여자아이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여자이다. 

그런 그녀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도, 그저 본인의 삶에 만족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한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그녀를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

주변사람들은 너무나도 평범하지만, 행복하고, 자신을 위해주는 가족들과 함께 열심히 살아가는 예지의 외적인 모습들만 보고서 이런저런 평가를 해댄다. 예지는 메이컵아티스트로 일을 하고 있다.

무언가에서 예뻐지는 것, 그리고 그런 꾸밈에 대한 꿈이 있었던 예지는 유명한 연예인들의 메이크업을 담당하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예지주변의 연예인들은 그런 평범한 사람들는 너무나 대비되고, 대조되는 특별하고 너무나 멋지고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고 예쁘고 멋진사람이다.

예지는 어느 순간 그들 속에서 그들과 비교당하며, 차별아닌 차별과, 모욕적인 말, 무시를 당하면서 마음 속 깊이 자신의 외모에 대한 불만족, 그리고 깊은 상처와, 죄책감을 가지게 된다.

자신의 내면이아니라, 자신이 책임지지 못하는 오로지 외면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예지는 애써 무시하고, 살아가려고 하지만 주변사람들은 그런 예지를 오히려 더 못마땅하게 보고 무시하거나 평가하거나 외모를 보고 가치를 매기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다.

물론 화려한 연예계에서는 그런 것들을 일상적이고 어쩔 수 없으며, 당연하다고 하겠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연예계라는 곳이 얼마나 더럽고, 얼마나 추악하며, 오리지 물직적이고, 욕망적이고, 자신을 위해 남을 짓밟고, 거기엔 오통 가식과 외면, 허영, 가짜, 거짓만이 판치고 난무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곳에서 어느 누가 정신적으로 병들지 않을 수 있을까,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아이돌, 연예인, 등등 미디어 광고 등에서 수많은 여자들이 예뻐질 수 있다며, 예뻐져야한다며 가르치고 주입하는 곳에서 온전히 자신의 본 모습, 내면의 진정한 가치에 눈을 돌리며 살아가리란 것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남자들 역시 비슷한 공모자로 등장하기도 한다.

아무렇지 않게 남의 외모를 품평하고, 등급을 메기며, 짐승마냐 사람취급도 해주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외모 때문에 차였거나, 등등 외모는 무수히 많은 딜레마와 차별과, 모순 그리고 대립을 보여준다.

남자들 역시 그들도 본능이라고 어쩔 수 없다고 하기에는 경비원의 아저씨 그리고 편의점 남자, 등등 우리 주변에서 여자가 겪을 수 있는 어떤 불쾌함과, 불편함을 너무나도 솔직하고 자세하게 표현했다.

그저 평범하고자 하는 사회에서 너는 외 특별하지도 않냐고 부추기고, 되세이고, 매일 속삭여주는 외모지상주의 강박 사회, 그리고 거기에 동조하는 미디어 광고 속에서 우리는 분명 남자건 여자건 서로 병들어 가며 싸우고 있는 중일 것이다.

남자들 역시 어쩔 수 없이 그렇다고 해도, 쉽게 차별을 한다던지, 앞 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던지 하는 가식적인 모습드로 인해 여자들은 분명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없을 만큼 조그마한 상처를 조금씩 입어가게 된다.

물론 그 중에서는 정말로 인성이 좋은 남자, 사람의 외면이아니라, 내면 그 가치를 보면서,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남아있는 마지막의 인간미가 무엇인지를 여자들에게 바르게 알려 줄 성숙한 남자라면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예지에게 그런 성숙된 모습으로 다가온 지훈조차, 끝으로 갈수록 아주 추악고 괴괴한 인간의 추락의 모습을 끝까지 보여준다.

앞 뒤 다르고 가식적인 남자들에게 혐오감을 느끼던 예지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예쁘게 봐주던 그리고 어떤 상처의 모진 말도 하지않고 항상 지긋이 자신을 지켜봐주던 지훈에게 호감을 느낀다.

어쩌면 지훈의 성숙해보이고 젠틀하면서 내적으로 아름답고 외모의 허영에 빠지지 않는 지훈에게 속아서 그를 사랑하고 좋아하게 된 것이겠지만, 결국 끝은 지훈의 변태적이고 사이코적인 민낯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영화는 기기괴괴한 결말의 아픈 현대의 남자와 여자 그리고 성형이라는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지금 이 사회에서의 성형, 그리고 병들어 가는 남자와 여자, 

이 영화는 완벽한 미와, 외모의 허영과, 욕망을 가진 한 여자에 대해서 아프지만 솔직하고 강렬하게 표현한 좋은 영화였다.

예지는 어렸을때부터 어쩌면 잘못된 관념이였을 수도 있지만, 자신의 외모때문에 남들의 싸늘한 눈초리 때문에 자신은 발레대회에서 2등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울면서 털어놓는다.

그 어린시절은 여리고 어렸던 예지에게 어떤 왜곡되면서 지울 수 없는 평생의 열등감이자 트라우마를 안겨주게 된 사건이다.

예지는 어릴 적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채, 그 왜곡된 시야와, 생각들로 평생 고통받는다.

어쩌면 예지는 자신의 곁에서 든든하게 지켜봐주고 지원해주고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가족들은 안중에도 없고 생각도 없었을 것이다.

왜냐면 예지는 모든 것 외모 탓이라는, 어쩌면 모든 것은 남탓이고, 사회탓이라는 생각이 어렸을 때 부터 예지의 마음속에 각인되어 깊은 왜곡을 낳았을 수도 있다.

그것이 예지의 숨은 열등감이 되어 예뻐지고 싶은, 너무나 예뻐지고 싶은 그런 욕망으로 하루하루를 고통속에서 자신을 불태웠을 것이다.

욕망과, 욕심, 그리고 외모, 광고, 물질만능주의, 차별, 열등감, 여기에 후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한 번 맛을 봐버린 욕망사이에서는 끝없이 추월하고 올라가고 나아가고자 하는 욕망만이 존재한다.

그런 것이 우연히 한 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되고자 하는 자신이 아니라 자신과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 되고자 변신하고 싶은 딱 한번이라도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 예지의 바램이자 소원, 그리고 욕망이였을 것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항상 어딘가 자신에게 불만족스럽고, 그런 자신을 고쳐야 하며, 날마다 변하고, 달라지고, 바껴야만하는 그런 소비사회에서, 자신에게 만족을 품는 순간은 죽을 때까지 존재 할 수 는 없을 것이다. 그 무엇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좋아해주지 않는, 사랑해주지 않는 그런 매정하고 혹독한 사회에서 예지는 누구나 한 번씩 해보는 그런 선택들에 흔들리게 된다.

비루하고 초라한 자신에게 벗어날 수 만 있다면, 그 누구도 사랑해주지 않는 자신에게서 한 번 벗어날 수만 있다면 

예지는 그런 욕망으로 운명의 선택을 하게 된다.

바로 전신 성형이라는 선택을 말이다.

어떻게 보면 예지가 너무 외모탓만 하고 사는 왜곡된 생각을 가진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회는 분명 예지에게 너무나 가혹했다. 있는그대로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어주 못하는 주변 세상들.

그 속에서 병들어간 예지의 마음은 온통 상처로 가득했으리라.

가족들의 사랑은 분명 중요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자신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런 자존감들을 얼마나 사회가 쉽게 무너뜨리며 그리고 그런 사회속에서 여자들이 얼마나 병들어가며 자신을 망까뜨려 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물론 조금 다른 선택을 해서, 성형 후 자신의 예전 모습과 다르게 좋아지고, 그로인해 자신의 콤플렉스 즉 어릴적 트라우마가 고쳐 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 만은, 사람의 욕망과, 만족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제 통제될 수도, 그리고 그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없는 받아들일 수 없는 불만족 끝의 비극은 결코 미리 상상 할 수 없으리라.

분명 예지도 그랬을 것이다.

한번 만 더, 조금 만 더 하는 그런 불만족으로 인해 왜곡된 자아감으로 인해 누구도 자신을 사랑해주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과 불안으로 인해 예지는 오히려 성형 후에 더욱더 인생이 고통스러워지고 불행해지게 된다.

예지는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던, 그 누구보다도 먼저 자신이 자신을 사랑해주지 못했던 가녀린 소녀이자 여자였다.

그랬기에, 성형 후에 오히려 더, 극심하게 외모에 집착하면서, 불안해하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본 모습이 들키면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버림받을거라는 두려움으로 인해 예지는 갈수록 극단적인 생각들과 선택들을 서슴치 않게 하게 된다.

자신을 조금씩 속이면서 셩형 후 더욱더 큰 비극에 빠지게 되는 예지.

자신의 모습에 절대적인 만족따위는 느낄 수 없었던 예지. 자신의 욕망으로 인해 매일 매순간 나나들에서 단 한순간도 편히 만족을 느껴본적 도 없이 더 큰 욕망을 바라게 된다.

그런 진정 자신의 편에서서 자신을 아껴주던 가족들에게는 오히려 돈을 달라거나, 그런 자신의 욕망때문에 자신의 살갗과, 목숨을 바치는 부모에게서 모든 것을 조금씩 뺏아가던 예지. 그녀는 욕망으로 인해 눈이 멀어 자신의 소중한 부모와 가족들은 애써 외면하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부모는 점점 늙어가고 수척해가며, 돈이 떨어져가면서 병들어 가게 된다.

자식의 욕망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면서 살갗을 내어주던 부모의 모습에서는 조금 슬프지만 분명 우리네의 현실에서 있을 듯 하게 깊이 와닿는 장면 중 하나였다.

 

 

 

 

 

 

그런 멈출 수 없는 욕망,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들을 붙잡기 위해 매일을 불안속에서 위태롭게 버티며 살아가던 예지 앞에 지훈이라는 남자가 나타나고 예지는 이 남자라면 자신의 과거도 받아들여지고, 왠지 순간순간 편안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왠지 지훈 앞에서는 어떤 위장과, 가식, 허세도 느껴지지 않아 다른 남자들과 다르게 느껴져 그에게는 마음을 열어보이는 예지.

매순간 불안과, 불만족 속에서 욕망에 눈이 멀어 아무렇지 않게 누군가를 죽이고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 예지.

결국 남의 것 까지 탐내고 욕심내면서 예지는 자신을 바꿔주고 성형해준 언니를 결국 무참하게 살해하면서 죽이게 까지 된다. 여기서는 분명 많은 심오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생각이들었다.

살짝 교훈적인 느낌이였달까. 물론 시술사가 너무 차갑고 잔인하게 말을 하기는 했지만, 결과는 너무 처참했다.

시술사는 수술하고 싶은,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주의 사회에서 모든 것이 허용되고 통용되는 돈을 가져오라고 닥달한다.

그리고 그런 돈을 가져올 수 없는 예지를 잔인한 말로 무시하고, 오로지 돈을 위해, 돈만을 가져오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심하기는 했지만, 분명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비극, 외모지상주의 그리고 물질주의 에서 우리는 분명 그 욕망의 끝은 돈이자, 피이자, 죽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불태우는 욕망의 끝에는 죽음이 언제나 몸을 움츠리며 숨어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순간에 나타나 우리는 잡아먹는다.

욕망이라는 것이 그렇다. 그것에 인간미, 인간성, 휴머니티, 내면, 아름다움, 진정한 가치따위는 있을 수 없다.

그저 외면, 껍데기, 그것을 위해, 우리는 돈이라는 가면을 가지고서 나의 몸을 치장하고 사회속으로 위장한다.

그리고 그런 돈이 존재하지 않을 때 우리는 분명 있는 그대로의 민낯, 그 속에 숨겨져있던 추악하고,

잔인한 민낯만이 서로에게 존재하고,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영혼의 진실한 감정은 존재하지 못한채 말이다.

그저 겉만, 겉만을 위해 껍데기를 위해 존재하고 살아가는 존재들에게 영혼이란, 자신을 방해하는 방해물에 지나지 않을 테니깐 말이다.

예지 역시 그런 시술사의 처음과 다른 본 모습에 충격을 먹고, 뒤로 되돌릴 수 없는 욕망 끝에 시술사를 잔인하게 죽이며 그의 살갗을 탐하며 새롭게 거듭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이 시대의 겉, 그러기 외면, 껍데기에 대한 우리들의 초상인 것이다.

우리들은 겉, 외면, 그리고 껍데기. 그것을 위해 예지처럼, 남의 것을 탐내며, 욕망하며, 만족하지 못하며, 불안해 하며, 자신의 진정한 가치와 모습은 잊어버리고 그렇게 뱀처럼 탈피를 거듭하듯, 남의 외면과 나의 외면을 평가하며 거듭 외면을 가면빠꾸듯 바꿔간다.

이 영화는 껍데기, 외면에 대한 심오한 비평이자, 비극, 그리고 우리들의 초상을 보여주는 리얼리티가 극심하면서 코믹스러운 영화인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남을 판단하며, 남의 껍데기 속으로 때로는 그 껍데기를 위해서 자신의 영혼을 팔아버리며, 매순간을 불안속에서 살아가면서, 나의 껍데기를 버리고, 팔며, 때로는 사고, 때로는 누군가의 껍데기를 부러워하며 죽이고, 사고, 팔고, 그렇게 우리는 외면, 표피, 껍데기만을 서로에게 팔고 사며, 남기며 서로에게 사라져 간다.

남은 것은 오리지 껍데기.. 거기에 영혼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껍데기에 부러워하며, 또 다시 욕망에 빠지며 우리는 무언가를 사거나, 팔거나, 그 허망함과 허상을 알지 못한채 그렇게 늙어가거나, 죽어가거나, 이용당하게 된다. 

누구로 부터 이용당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저 껍데기에 불과 한 것들에 매혹당한 사람들로 부터 말이다.

이 시대에 알맹이는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는 매 순간 고민하고 고민했다. 나 역시 그런 외모지상주의가 극심한 사회에 살면서 한 두번 상처를 받아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였다.

매일 누군가의 작은 비평과 판단 지적들로 인해 조금씩 자존감은 나도 모르는 새 쥐에게 갉아 먹히듯 사라져 가고, 마음은 작은 상처들로 인해 조금씩 커다란 구멍들로 열등감이라는 것에 자리는 내어주게 되었다.

끝없이 자신에 불만족하고, 달라져야하고, 진정한 너 자신이 되면 안되고, 더 낳아져야 하고, 자신의 결점을 만들어주며, 그리고 그것을 하나의 개성의 존중이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 져야만 하며 그렇게 달라져야 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성형을 하고, 남들과 점점 같은 사람으로 얼굴이 변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개성이라는 것은 조금도 존재 할 수 없이,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두려움에 몰아넣아, 자신의 개성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그런 병든 사회, 사랑이 없는 사회, 러브리스, 우리는 분명 지금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이 없는 , 그리고 알맹이가 없는, 그리고 영혼이 없는, 러브리스 한 세계를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그 무서운 비극에 대해 우리들의 자화상을 애니메이션으로 솔직하게 표현하고 보여준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너무 깊이 들어가서 감상문을 풀어내는 것일 수도 있지만, 분명 나는 요즘 외모라던가, 성형이라는 문제들이 그리 쉽게 넘어가서는 안 될 정도로 심각하며, 어린 소녀들에게 막심한 고통과, 불안, 상처를 줄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많은 걱정이 들었다.

제대로 된 판단이 되지 않는 시기는 온통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열등감이 가득한 그런 세계이자, 무분별한 광고들 속에 속아서 자신을 잃어 버릴 위험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였다.

그리고 이 사회는 그런 여자, 소녀들에게 너무나 냉혹하고 잔인하고, 무섭고, 괴괴하기에 어쩌면 현실은 더욱 무섭고 기기괴괴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적 제대로 된 외적 자아감을 가지지 못하면 분명 자아상에 큰 상처를 입고, 평생 구멍난 곳에 다른 것들로 욕망을 채우기 바쁠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 그 구멍속에서는 자신의 가치, 개성, 영혼, 알맹기가 존재하는 멋진 선물인데도 말이다.

우리는 그 마음속 구멍을 허영과, 가식, 가짜, 욕망으로 메우기 바쁘니깐 말이다.

나 역시도 많은 고민들을 해왔으며, 그런 판단들 속에서 많은 고통을 받은 사람중 하나였다.

정말 내가 남들과 다른 것이 이상한 것이며, 바꿔야하고 고쳐야 하는 것인지, 

나의 개성은 정말 고쳐야하며, 왜 무엇때문에 그것으로 인해 자신감을 잃어야하고, 그것으로 인해 내 자존감이 낮아져야 하는지 무수히도 많이 고통스러워하고, 괴로워했다.

단 한 사람도 손을 내밀어주고 나를 있는 그대로 좋아해 준 적이 없었기에, 나는 더 욱더 나의 영혼, 개성,이 사라져가는 것을 느끼며 괴로워 했다.

그것을 되찾기 까지 꾀 많은 시간이 걸리고, 꾀 먼길을 돌아오고, 그 구멍을 물질, 허영, 욕심, 불안으로 채우는게 아니라,

나의 개성, 영혼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어야 했기 때문이였다.

병든 사회는 그렇게나 표피만을 위해 그저 겉, 표피만 스쳐지나가는 타인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껍데기 혹해서 , 때로는 그런 욕망들은 그저 껍데기만을 공유하는 가볍고, 지루한 타인들과 일상들만이 존재할 뿐이였다.

우리는 그래서 때로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공허함과 허망함을 느끼는 것이겠지.

영혼과, 개성, 그리고 알맹이는 느낄 수 없는 그런 가벼운 관계와, 따분하고 흔한 타인들만이 존재 하는 그저 그렇고 그런 삶말이다.

 나 역시도 아직도 많은 고민과 내적갈등에 쌓여있는 사람중에 하나이다.

물질과 영혼에 대해서, 껍데기와 알맹이의 선택들의 순간들에 대해서, 그리고 나 자신의 영혼을 갈망하고 개성을 추구하지만, 때로는 불꽃같은 욕망과, 욕심에 마모되어지는 순간들의 모습들에서 매번 무엇을 선택하면서 살아가야하는지, 나는 아직도 많은 방황과 고민속에 있다.

나 역시도 때로는 나 자신의 이기심과도 같은 개인적 욕망을 때로는 세속적이고, 때로는 인류를 위해 초월적인 삶을 기도하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나 역시도 매번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않는 사회속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그런 압박들 속에서 굴복하고 싶어질 때가 많다. 때로는 나도 있는그대로의 내가 아니라 성형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그런 고통스러운 욕망들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고, 그것으로 자존감이 올라가도록 만든 사회가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다.

왜 내가 무엇때문에 그것으로 인해 자존감이 올라가야 하는가 그리고 왜 그것 때문에 자신감이 내려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나는 그렇게 눈치를 보며, 그런걸로 열등감을 가져야 하며, 왜 그런 판단들을 두려워 하는 것일까,

이 것은 남자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속에서 오로지 여자들에게만 정해진 어떤 감옥이자, 통제가 아닐까 

리고 우리 여성들은 거기서 어떻게 자신을 지키고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가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등등 말이다. 나는 무수히도 많은 고민을 했었다.

남자들은 아무렇지 않게 때로는 여자가 물건이듯이 품평을 하거나 저울질을 하지만, 때로는 그런 비교들로 인해 여자들은 자신이 병들어가는 것을 알고 자신을 지켜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건강하지 못한 사회와, 오로지 허상인 껍데기만을 추구하는 남성 또는 여성들로 부터 말이다.

나는 그런 많은 선택들 압박들 속에서 나 자신을 지키고자 많은 노력을 여전히 하고 있고, 하지만 나도 인간이기에

때로는 욕망이 깊이 불타오르는 순간들로 인해 나 자신도 어쩌지 못하고 후회하는 순간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방황하는 한 인간이자 여자일 것이다.

 

 

 

 

 

 

 

하지만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예지에게 다가온 지훈도 결국은 겉만 번지르르한 오히려 더욱 지능적인 껍데기에 도취된 정신병자 사이코패스였을 뿐이였다.

오히려 더욱 잔인하게 진화 된 사이코 패스였달까,

그래서 지훈 역시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에게 비교당하는 어린 시절을 보상받기 위해, 그 상처를 보상받기 위해, 남자로 변신 한 뒤, 예쁜 여자들에게 접근해서 그들의 모습 중 아주 예쁘면서 개성있는 부분을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그녀에게서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남의 것이든 뭐든 살인이든 뭐든 중요하지 않다.

그저 아름다워지고 예뻐질 수 있다면, 여자들 속에서 예쁜 부분들만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가지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욕망이 풀렸던 그녀 , 사이코패스 지훈. 그는 그렇게 보여준다. 결국 결점하나 없이 완벽하게 아름다워지고 예뻐진다는 것은 이렇게나 부자연스럽고, 괴괴하고, 불가능하며, 결국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이 이렇게나 잔인해지며, 

그 끝은 인조스럽고, 개성이 없으며, 자신이 없고, 완벽은 불가능 하다는 것을 말이다.

예뻐지기위한 노력만큼 그렇게 부자연스럽고, 위태로운 욕망이자, 불가능하면서, 자연스러우면서, 개성있고, 사람각기가 그저 한 존재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는그대로 존중받지 못하는, 다양한 자유로움과, 외적 존중, 외적 자유가 없는 사회가 얼마나 부자연스러운지를 보여준 영화. 기기괴괴 성형수.

결국 최고로 아름다워지고 예뻐진 예지는 성형 전에 가지고 있던 자신의 본래의 눈, 다른 부정적인 것들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불 수 없었던 자신의 아름다운 눈을 지훈의 욕망으로 인해 지훈에게 결국 빼앗기고 결국 완벽한 미는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 할 수 도 없고, 결국 그 끝의 욕망은 허망한 비극이라는 것으로 영화는 끝나게 된다.

지훈 역시 예지에게는 기괴하게 병든 한 남자에 불과했다. 기대했는데 역시나 말이다.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말이다. 그 역시 왜곡된 외모지상주의 피해자이자, 겉만 그럴 듯하지만 속은 역시나 너무나 병든 이 시대의 남자를 대표한 지훈. 지훈의 완벽한 모습들에서 어딘가 오싹하고 묘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아니다 다를까 예쁜 것을 위해, 그것을 물건처럼 가지기 위해, 사이코패스로 변해 버린 지훈, 

이 영화는 하나같이 훈훈하고 정상적인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딘가 괴괴하고 기괴스럽고 완벽해서 오싹한 그런 무섭고, 병든 변태적인 사람들만 나온다. 

어쩜 그렇게 돈과 물질에 병든 사회이고, 인간성의 바닥을 보여주기 위해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오로지 속고, 속이기 위해, 불평과 불만,  껍데기를 쓴채, 남을 이용하기 위해, 위장하듯이 말이다. 

연예계라는 곳이 어쩜 그래서 무서운 곳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예지는 후회한다. 진정으로 소중한, 어릴적 아픈 자신을 위해 뒤에서 소리없이 지켜봐주고 응원해주던 자신의 철없는 짓도 용서하고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었던 부모를 끝으로 생각하면서 말이다.

 

 

 

 

 

끝으로 

교훈적이면서, 이 시대의 껍데기와 알맹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영화.

돈, 물질,욕망, 허상, 허무, 이런 것들은 분명 하나의 표피, 겉, 껍데기일 뿐이다.

거기에 알맹이, 영혼, 개성이란 것들의 소중함은 존재하지 않고 지워져 갈 뿐이다.

그래서 감독은 보여준다. 이 영화를 말이다.

그렇게 미친듯이 남의 거짓된 껍데기를 욕망하고, 갈취하고, 빼앗고, 속고

속이고, 사로 숨기면서 한 낯 허망한 껍데기에 목숨을걸고하는 표피에 불과한 것에 장난을 치는 인간들의 허망된 모습이 어떠한 지를 말이다. 

내 마음속의 구멍들에 무엇을 채워나가는지, 그리고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우리의 자화상을 

비극적이게 표현한 솔직하면서 조금 코믹했던 영화 기기괴괴 성형수.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느겼다. 알맹이가 없는 사회란 저렇게나 기기괴괴하고, 호러스럽고, 무섭고

욕망을 위해 삶이 지옥으로 변해버리는 그런 사회, 분명 우리는 그런 껍데기 뿐인 사회 속에서 사이코 패스 처럼 병들어가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민낯, 개성, 그리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마음, 내면의 아름다움 등이 얼마나 소중한지 말이다.

 

 

명대사로는

"눈이 참 예쁘시네요"

가장 임팩트 있게 기억에 남았다.

우리는 자신의 모습에서 언제나 부족한 것만 찾는다.

그러나. 긍정적으로보면 우리에게는 언제나 그만큼의 다른 분명 남과 다른 나만이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다. 

 

 

 

이 영화 감상문은 영화를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쓴 지극히 주관적이고 지극히 망상적으로 써본 저의 개인적인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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